각자 잘하는 분야에 ‘화력 집중’
‘차별화’된 경쟁력 만들기 ‘초점’

LS전선이 가온전선을 자회사로 편입함에 따라 전선시장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관련 업계의 셈법이 복잡하다.

국내 최대의 전선업체인 LS전선과 중저압, 시판용 전선 리더 가온전선이 수직계열화되면서 만들 수 있는 시너지는 쉽게 예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감몰아주기 리스크 ‘해소’

먼저 LS전선의 가온전선 인수로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로 인한 LS 오너 일가의 부담이 상당부분 줄어들 전망이다.

현행법상 대기업의 경우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연 매출의 30%를 넘는 수혜 법인(일감을 받은 기업)의 지배주주나 친인척 가운데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이들은 증여세를 내야 한다.

부모자식 등 친인척 간 거래를 통한 편법적인 증여를 막기 위해서다.

이번 거래를 통해 LS오너 일가가 보유하는 가온전선의 주식은 최대 1.85%를 넘지 않게 됐다.

구자엽 LS 전선부문 회장(6.17%)과 구자열 LS그룹 회장(5.54%), 구자은 LS엠트론 대표(4.80%), 구자균 LS산전 대표(3.69%), 구자용 LS네트웍스 대표(3.69%), 구자홍 LS-Nikko 동제련 회장(3.14%) 등 3%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이들의 주식은 모두 LS전선에 매각됐다.

여기에 구자철 예스코 회장(2.72%), 故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딸 구재희씨(1.85%) 지분까지 LS전선은 단숨에 가온전선의 주식 총 131만4336주, 31.59%를 보유한 대주주로 뛰어오르게 됐다.

LS전선·가온전선 관계자는 “이른바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보다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LS전선과 가온전선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이러한 리스크를 털고 나오면서, 전선 사업의 효율화와 투명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초고압·해외 사업 ‘시너지’ 기대

일감몰아주기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LS전선과 가온전선 간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보다 확대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전선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경쟁과 협력 관계로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시판시장에서 서로 부딪히는 기업들이 소재 구매·판매자로 협력하고, OEM 관계로 묶여있다. 해외 턴키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면서도 현지에서 가격 경쟁을 벌이는 등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시장이다.

LS전선과 가온전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같은 LS그룹에 속한 형제 기업이면서, 배전급 케이블 내수 시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경쟁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다. 가온전선이 신성장동력으로 초고압 케이블 사업을 추진하면서, LS전선과 해당 사업 분야에서 선도 기술의 교차 활용, 공동 협상을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 등의 이점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또한 가온전선이 지난해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통한 사업재편을 추진하면서, 가온전선이 정리한 초고순도 구리 OFC(Oxygen Free Copper) 생산 사업을 LS전선이 넘겨받기도 했다.

양사는 또 미얀마에 공동 투자를 단행, 합작법인 ‘LS-가온 케이블 미얀마(LSGM)’를 설립하는 한편, 현지 시장을 함께 공략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인수를 통해 이 같은 협력관계가 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LS전선의 국내 민수 물량 중 일부를 OEM으로 생산하면서, 초고압 케이블 제품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게 돼, 사업 경쟁력 강화도 수월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함께 해외 공동진출·투자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해외 매출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LS전선과 중저압·시판 내수시장 1위 가온전선이 각자 잘하는 분야에 보다 집중,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구자엽 LS 전선부문 회장이 올해 초 강조한 ‘모든 영역에서의 효율성·생산성 강화’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는 얘기다.

◆글로벌 톱 브랜드 몸집불리기 ‘가속화’되나

전선업계는 이번 LS전선-가온전선 자회사 편입으로 글로벌 전선 업체들의 ‘몸집불리기’ 경쟁이 촉발되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011년 세계 2위였던 이탈리아의 전선업체 프리즈미안이 5위 전선업체였던 네덜란드의 드라카를 인수하면서 당시 1위였던 프랑스의 넥상스를 제치고 글로벌 톱으로 도약했다.

프리즈미안은 이어 작년 말 세계 4위이자 미주지역 최대 전선업체인 미국 제너럴케이블을 인수하면서, 전무후무한 글로벌 전선업계의 공룡으로 거듭났다.

이번 합병으로 프리즈미안-제너럴의 합산 연매출은 110억유로(약 14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며, 2위인 넥상스보다 2배 이상 큰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LS전선 또한 가온전선 인수를 통해 연매출 6조원대의 공룡기업으로 재탄생한다.

LS전선 관계자는 “매출 3조원대인 LS전선과 7000억원대인 가온전선, 2조원대인 미국 수페리어 에식스(SPSX)가 더해져 전체 매출 6조원대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며 “LS전선은 현재 2위인 넥상스(약 7조6000억원)와의 차이를 좁힐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전선업계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글로벌 전선 업체들의 몸집불리기 경쟁이 촉발돼 인수합병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몸집불리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선 시장은 특성상 지역별 거점 중심으로 경쟁이 진행된다. 원자재인 동값의 매출 비중이 매우 크고, 마진은 적은 데다 제품의 부피·중량도 상당해 생산거점에서 먼 곳까지 수출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운송이 용이한 지역별 생산 거점에서 제품을 생산·납품하는 방식을 주로 활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거점을 보유하고 있는 프리즈미안이 제너럴케이블의 지역 거점까지 보유하게 된 터라, 거점 경쟁에서 밀리면 순식간에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경쟁사들도 거점 확보와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데, 여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M&A인 것이다.

LS전선 관계자는 “프리즈미안의 장점은 전 세계 거점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LS전선은 세계 각국에서 프리즈미안의 거점과 경쟁해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 지역별 출자사의 역량을 키우고 연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며 “프리즈미안이 제너럴 케이블을 인수하면서, 거점은 더욱 확대되고 지역별 경쟁은 보다 치열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거점 전략에 대한 고민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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