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황혜민‧엄재용 부부는 공연 ‘오네긴’을 통해 은퇴식을 선보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황혜민‧엄재용 부부는 공연 ‘오네긴’을 통해 은퇴식을 선보였다.

올해 공연계는 정치, 국제정세, 사회 등 외부적인 이슈에 휩싸여 혼란기를 겪어야 했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대표적인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들 수 있다. 이 블랙리스트로 인해 연극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상대 후보를 지지했거나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각종 정부 지원 프로젝트에서 탈락하면서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입었다.

지난 9월 시행 1년을 맞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미친 클래식음악계의 영향은 여전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기업의 후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클래식음악계의 시름이 특히 깊어지고 있는 것이 각종 증언과 지표에서 확인됐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로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관광 공연업계가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특히 단체로 내한하는 중국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난타’ 등 넌버벌 퍼포먼스 업계에 큰 피해를 안겼다.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현지 공연도 무산되면서 순수예술 교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드라마, 가요에 이어 차세대 한류로 지목되던 뮤지컬의 중국 진출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 미국팀의 아시아 내한공연에 함께 한 김소향은 중국 공연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빨래’와 ‘마이 버킷 리스트’의 현지 라이선스 공연이 그나마 위안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한 상처도 새 정부 들어 점차 아무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특성화극장 지원 사업’, ‘공연장 대관료 지원’ 등 지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로 인해 지원을 중단했던 사업들이 복원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2017 공연예술 창작산실’ 선정작 22개 작품 목록에는 하땅세, 백수광부, 놀땅 등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극단들이 대거 포함됐다.

내부적으로는 역시 예술가들과 콘텐츠의 힘을 확인한 해이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올해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 최초 우승을 차지한 이후 조성진과 함께 한국 클래식음악계를 이끌어갈 연주자로 우뚝 섰다.

조성진은 자신의 꿈이던 미국 카네기홀 데뷔 무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첫 협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명성을 이어갔다.

원조 블랙리스트로 통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태어난 지 100년을 맞아 그를 재조명하는 작업과 음악회도 활발히 이어졌다.

뮤지컬은 몇 년 째 거듭되는 침체기 속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과 현상, 작품들을 남겼다. 우선 뮤지컬 ‘캣츠’는 지난 16일 대구 공연을 기점으로 한국 뮤지컬업계 최초로 뮤지컬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뮤지컬이 문화 상품으로 경제적 가치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한국 대형 창작 뮤지컬이 유독 눈에 띈 한 해였다. 올해 초 촛불 정국과 맞물리며 흥행에 성공한 안중근을 소재로 한 ‘영웅’을 시작으로 ‘아리랑’, ‘마타하리’, ‘벤허’, ‘서편제’, ‘햄릿 : 얼라이브’, ‘모래시계’, ‘광화문연가’ 등이 관객을 찾았다.

세계적으로 보편화·확산되고 있는 공연 형식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er)’이 국내에서도 대세로 확인됐다. 무대와 객석이 사라진 형태로,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공연장을 자유롭게 돌아보면서 둘러보거나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의 작품을 가리킨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아트선재센터와 공동제작한 ‘천사 - 유보된 제목’, 김연수 작가의 동명소설(2001)이 바탕인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굳빠이, 이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관객참여형 공연의 하나로 선보인 관객참여형 씨어터 RPG 1.7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가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무용계에서는 중견 무용수들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지젤’ 등으로 국내 무대에 오른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수석무용수 김세연, ‘라빠르트망’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발레리나 김주원, 여전히 공고한 파트너십을 몇차례 선보인 한예종 김용걸 교수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콤비 등이다. 유니버설발레단(UBC) 수석무용수였던 황혜민과 엄재용 부부는 ‘오네긴’을 통해 아름다운 은퇴식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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