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삼정KPMG 본부장(서울대학교 겸임교수)
김성우 삼정KPMG 본부장(서울대학교 겸임교수)

대내외적으로 북핵위협과 경제불안이 유례없이 한반도의 리스크를 고조시키고 있는 시점이지만, 지난 9월말 뉴욕에서는 제72차 UN총회가 열려 많은 글로벌 리더들이 다양한 논의를 이어갔다. 필자는 한국인 최초로 선임된 IETA(International Emission Trading Association) 이사 자격으로 다양한 관련행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글로벌 리더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발표 및 토의를 진행했다. UN총회답게 화려한 VR헤드셋이나 드론 대신, 열정적 협력과 새로운 해결책으로 가득 채워졌다. 회의 주제도 기후에너지, 임팩트투자, 블록체인, 국제개발협력, 탄소시장 등 다양했다.

이 중 우리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역시 지속가능개발과 4차 산업혁명의 접목이다. 통상 IETA 이사회 때는 모든 이사들이 글로벌 회사의 부서장들이라서 한 번 모여 이사회 안건을 심의하기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특별히 외부 인사 두 사람이 초청됐다. 한 사람은 백악관 인사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블록체인 전문가였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기술인 블록체인의 활용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환경에너지 분야에 대한 실제 응용에 있어서는 배울 것이 많았다. 블록체인이란 거래 정보 기록을 특정기관의 중앙 서버가 아닌 P2P 네트워크에 분산해 참가자가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분산형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기술이다. 모든 사용자가 검증하므로 위변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중앙 주체가 없어 위험이 집중되지도 않으며, 거래비용이 매우 적다. 이에 핀테크 뿐만 아니라 토지대장, 헬스케어, 제조업, 유통, 사물 인터넷 등 여러 분야에서 블록체인 활용사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등장한 적용사례 중 주목할 분야는 에너지 거래다. S&P에 의하면 이미 전세계 대표적인 분산전력거래 신생회사 6개사가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 발행을 통해 경영권희석 없이 2억불을 조달하고 있다. 투자자는 가상화폐의 상승을 노리거나 전력구매를 무료로 받기 위해 투자한다. 사업모델은 중앙거래소 없이 집과 집, 집과 발전소를 직접 연결해 블록체인으로 전력거래를 최저가로 자동 중계하는 구조다. 일부 회사는 가상화폐 발행시 투자자를 대기명단에 넣어야 할 정도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신생회사의 자본조달이 성황이다.

또 다른 적용사례는 탄소거래다. 올해 3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국제 탄소거래가 체결됐다. 탄소배출권이 필요한 투자자와 아프리카 탄소배출권을 보유한 회사 간의 거래였고, 맥킨지 글로벌 법무법인과 마이크로 소프트가 구조 및 기술 자문을 담당했다. 이들은 여러 채널을 통해 최초 사례의 유효성을 설명하며 타 시장으로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탄소거래에 활용하는 것을 구체화해 보면, 중앙집권식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기존탄소거래에 비해 비중앙집권식 블록체인기반 탄소거래는 매우 투명하고 비용이 적고 기간이 짧다.

예컨대 거래투명성 제고로 중국 등 후진국 탄소배출량 더블카운팅을 방지할 수 있고, 거래비용을 낮춰 기업의 탄소실적 뿐만 아니라 개인의 탄소실적까지 쉽게 관리할 수 있으며, 거래기간을 줄여 관련 탄소관련 투자를 획기적으로 촉진할 수 있다. 본격화 된다면 이는 현재 전세계가 직면한 탄소시장의 기술적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미세먼지/탄소 관리에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 이를 기후환경 문제가 더 심각한 중국 등 해외로 수출한다고 가정해 보면, 이는 4차 산업혁명을 활용한 시그니처 공유가치창출(CSV) 사례임은 물론, 우리나라의 IT경쟁력을 환경에너지 산업에 적용하여 미래 글로벌 신사업을 선점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UN총회 기간 내내 뉴욕의 심장에 머물며 연일 TV에서 북핵 위협과 트럼프 자국우선주위에 대한 뉴스가 홍수를 이뤄 다소 불안했지만,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통해 세계를 비추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로고를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 졌다. 아마 불가능해 보였지만 IT의 대표기술인 반도체로 세계를 석권했듯이, 이번에도 4차 산업혁명의 대표기술인 블록체인으로 다시 글로벌 시장을 제패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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