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방송인, 칼럼니스트
김수민/방송인, 칼럼니스트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 공감능력이다. 내가 남의 아픔과 기쁨에 공감하거나 남들이 내 감정과 처지에 공감할 때, 놀랍게도 치유의 능력이 상호간에 작용한다. 그런가하면 개만도 못한 인간들보다 차라리 반려동물과 공감을 나누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가는 것 같다.

지난 달, 플로리다에서 일어난 엽기적 사건을 한 외신에서 다룬 적이 있다. 한 남성이 연못에서 빠져 죽어가는데도 일단의 틴에이저들이 손 놓고 구경만 했는데 흥에 겨운듯 웃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경찰 당국이 밝혔고 심지어 이 31세 남자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을 비디오로 녹화한 사실이 밝혀졌다. 죽어가는 사람을 비웃고 놀려대는 웃음 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는데 그를 향해 "결국 되지게 될 거야" "난 도와줄 생각이 없어"라는 등의 말들이 녹화되어 있었다.

해당 경찰서장은 이들의 행동에 대해 ‘완전히 비인간적이며 잔인한 짓’이라고 비난했으나 이들을 처벌할 법 조항이 어디에도 없어 또 한번 분개했다.

생각해보면 군대 내 폭력이나 학교 내 왕따도 남의 아픔이나 처지를 입장 바꿔 생각하는 공감능력의 부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공감은 커녕 남의 아픔이 내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화인 맞은 양심은 전쟁과 폭력, 기아 등 커다란 재앙을 몰고 온다. 늙은 부모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것도 그 외로움과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인데 2015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58.6명으로 평균의 3배에 이르고 있다. 부모는 오로지 자식의 앞날을 위해 노후대책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경제적으로 자식들의 부양을 받을 만한 처지의 노인이 많지 않다. 병든 몸과 외로운 마음에 공감해줄 수 있는 가족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고 한계에 다다를 때,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점점 공감의 능력을 상실해가는 걸까..왜 잔인해지는 걸까..?

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위주의 교육이 체질화된데다 폭력과 살인을 대수롭지 않데 생각하게 되는 청소년기의 게임중독,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가도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각자가 SNS에 매몰되는 스마트폰 중독, 높은 실업률로 척박해진 심경들..가족문화를 지키려 애쓰던 기존의 삶의 방식이 무너지고 가족의 해체와 1인 가족의 일반화 등이 복합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옆집에서 독거노인이 굶어죽고 극빈 가정의 자녀가 어려워도 나, 우리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적 무관심의 그림자가 짙어가고 있다. 우리민족 전통의 두레문화라든가 가족공동체 정신이 그리운 세대다.

추운 겨울날 한 엄마와 아들이 육교 밑에서 구걸하는 한 거지 노인을 만났다. 아들이 엄마한테 ‘엄마 저 할아버지 넘 춥겠다, 돈 가진 거 있어?’라고 하자 엄마는 ‘그래, 많이 추우시겠구나, 이 돈 두손으로 깡통에 넣어드리고 오렴.’이라며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잠시 후 두 번째 가족이 지나갔다. ‘엄마, 저 할아버지 봐..돈 좀 갖다드릴까?’ 라고 하자 엄마는 아들에게 ‘야, 정신차려! 너두 평소에 공부 안하면 저렇게 돼, 알았어? 라며 냉담한 표정을 날리고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 이 아들들이 장성했을 때 엄마가 전화를 한다.

“아들, 엄마가 오늘 너무 아픈데 좀 일찍 올 수 없니?” 이때 전자는 이런 반응을 한다.

“응, 엄마, 많이 아퍼? 조금만 기다려, 오늘 회식인데 부장님한테 얘기하고 약 지어가지고 빨리 갈게.”

그런데 후자는 이렇게 반응하며 언성을 높인다.

“아니, 그러게 내개 뭐라고 했어! 평소에 자기관리좀 잘 하라고 했지? 아후 정말 바빠 죽겠는데 집까지 협조를 안해주네...!”

후자는 공감의 능력 대신 엄마로부터 비판과 지시를 배운 것이다. 부메랑이 되어 되돌려 받는 자녀교육의 예다. 입시위주의 교육, 오로지 성공이라는 목표에 가치를 두고 채찍질을 해 온 결과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선입견을 바탕으로 바로 충고한다. “이래서 여자도 군대 갔다와야 돼!” “내 생각엔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먼저 들어주는 것이다. “힘들었겠구나..!” “밥 같이 먹을까, 뭐 좋아해?”

언어학에서는 세상의 언어를 소리언어(verbal language)와 비소리언어(nonverbal language)로 구분하는데 표정, 신호 등 비소리언어가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위의 경우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비소리언어로 공감해 준다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오늘부터 가족과 동료와 이웃, 비즈니스 상대에게 공감언어의 훈련을 해보자. 치유와 회복, 성과의 보상이 내게 선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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