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토크쇼 ‘비정상 회담’을 즐겨 본다, 세 명의 MC와 한국에 살고 있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 10여명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비정상 회담은 나라의 정치적 지도자, 우두머리들의 회담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정상 회담’이라는 용어를 교묘히 바꾼 말로, 앞에 ‘아닐 비’(非)를 붙여 ‘정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회담’이라는 뜻과,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색다른(Unusual) 사람들의 회담’이라는 뜻 모두를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여러 나라 출신의 젊은 외국인 출연진의 재기발랄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가 봉착한 현실적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며 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한 해답을 함께 찾아보는 토크쇼이다. 이러한 포맷이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2014년 7월 첫 방송 이래로 다수의 방송 관련 수상을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비정상 회담은 그동안 외국인 출연진들을 소품처럼 등장시켜 문화적 이질감을 부각시키고, 한국 문화에의 적응을 강요하는 이야기 구조로 사회 통합을 저해하던 기존의 방송 프로그램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문화와 외국인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 하고 있다. 한국인이 주체가 돼 외국인 출연진을 대상화하거나 보조 역할에 그치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외국인 출연진이 주도적으로 내용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된다는 점이 비정상 회담이 갖는 가장 큰 차별성이라 할 수 있다.

비정상 회담의 인기에 힘입은 것일까. 최근 서울시는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서울의 안전실태를 평가하고,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한 ‘안전분야 외국인주민 비정상 회담’을 개최했다.

해외 도시와 서울의 안전 비교, 서울생활에서 가장 불안한 측면, 서울에서 생활하며 겪은 불편사항 등에 대해 토론했다. 토론의 전 과정을 기록해, 외국시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전분야 키워드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도출하는 정성적 분석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통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단일민족주의와 순혈주의 전통을 유지해 오던 우리나라도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섰으며, 5년 안에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제는 다민족, 다문화주의 패러다임에 입각해 타문화 이해, 편견 극복, 관용의 가치가 요구되고 있다. 개인 또한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정체성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요구받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이 교사로 근무하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비정상 회담 프로그램을 활용해 ‘세계시민교육’을 실시한 사례이다. 그는 총 50회 분량의 비정상 회담 녹화 자료로부터 다문화와 관련된 교육적 내용 요소를 추출, ‘글로벌 인권교육’과 ‘반 편견, 반 차별 교육’용 수업자료로 재구성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세계시민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다문화 수용성이 놀라울 만큼 향상됐으며,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다문화적 이슈에 대한 학생들의 관점이 인지적, 정의적, 행동적 영역에서 고르게 확대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학습효과는 해외체류경험이나 경제적 상황, 부모의 학력이라는 개인의 변수를 초월해 모든 학생들에게서 고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정상 회담과 같은 TV 매체를 세계시민교육에 접목시키려는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교육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인은 강조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TV 프로그램을 잘 활용한다면 전국 어디에서든, 어떤 다양한 계층들에게든 일반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시사점이 크다고 하겠다.

혈통, 출신지역, 자민족 중심주의와 같은 좁은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세계,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인종을 포괄하는 상생의 새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남숙(아시안프렌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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