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물이자 길조…12간지 중 유일한 조류

붉은 닭의 해, 2017년 정유년(丁酉年)의 해가 밝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은 때론 야속하지만 2016년 ‘병신년(丙申年)’과의 작별은 새삼 시원섭섭하다. 요즘 들어 닭은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됐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닭은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왔다. 특히 매일 아침 같은 시간 목청을 높여 시간을 알리고, 매일 알을 낳는 닭을 보고 사람들은 하늘의 지령을 받아 땅에 내려온 심부름꾼이라고 칭하기하고,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수탉의 벼슬과 관직에 나아가는 벼슬이 동음이의어였기 때문에 입신양명을 꿈꾸는 선비들은 수탉을 그려 그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만큼 닭은 영물이자 길조 대접을 받았다. 악귀를 쫓기 위한 방편으로 닭 그림을 대문에 걸거나 집 안에 붙여두곤 했고, 닭의 기운을 받고자 새해 첫날 떡국에 닭고기를 넣어 먹기도 했다. 닭 울음소리를 통해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일도 있었다. 12간지를 이루는 동물 중 유일한 조류라는것도 눈길을 더한다.

◆닭에서 인간의 다섯가지 마음을 보다

한나라의 한영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노나라 애공과 신하 전요의 대화가 등장한다. 전요는 여기서 닭의 다섯가지 덕을 빗대 선비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머리에 관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에 갈퀴를 가진 것은 무(武)요, 적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혼자 먹지 않고 동료를 서로 부르는 것은 인(仁) 이요,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고 시간을 알림은 신(信)이다.”

닭에 유교의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닭이 모이를 서로 나눠 먹는 것은 어짊이 스며 있기 때문이고(仁)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은 의로운 것(義)이며 머리위에 항상 관을 바르게 쓰고 있으니 예(禮)를 갖췄고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둘러보는 것은 앎을(智) 추구하는 행동이고 아침마다 어김없이 때를 알리니 신의(信)가 있다는 생각이다.

닭의 해를 맞아 닭이 가진 다섯가지 덕을 조금씩 추구해 나간다면 풍요로운 한해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재미로 보는 띠별 궁합

닭띠는 일반적으로 자기 확신이 강하고 부지런하며 적극적인 성향을 띤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짓을 모르고 의리있는 성격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때론 보수적이고 고집스러운데다 성격이 급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창의력과 모험심은 강하지만 꿈이 너무 커 때론 성공하지만 때론 인생의 심한 굴곡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의료계나 광고계, 군인, 여행가가 좋은 직업으로 꼽힌다.

닭띠의 이러한 성향은 지혜롭고 직관적인 뱀띠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정적 성격의 소띠나 세련된 모습의 용띠와도 좋은 궁합을 보인다.

상극은 토끼띠다. 토끼띠는 닭이 가진 화려함이나 낭비벽을 견디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닭띠끼리의 만남도 추천할 정도는 아니다. 충돌이 자주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 친근감이 부족해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쥐띠와도 아쉬운 궁합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개띠도 닭띠와 잘 어울린다고 보기 어렵다.

◆역사 속, 삶 속의 닭, 신성하게 또는 친근하게

고대 국가였던 신라와 닭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라의 시조로 알려지는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중 박혁거세와 김알지가 모두 닭과 연관이 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온 말이 낳은 알에서, 박혁거세의 왕후 알영은 닭의 형상을 한 용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 특히 알영은 입이 닭 부리와 같았는데 깨끗이 씻긴 후 부리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말이 낳은 알과 닭의 형상을 한 용은 얼핏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학계에서는 이를 닭을 토템으로 삼았던 토착세력(알영부인)과 새로운 통치세력이 된 이민세력(박혁거세)의 결합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있다. 결혼을 통한 연합으로 고대국가를 형성했다는 설이다.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계림(鷄林)에 탄생설화를 담아냈다.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석탈해는 어느날 월성 서쪽 시림(始林)이라는 숲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아 숲으로 가보니 금빛 궤짝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궤짝 안에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김알지다. 이 또한 신라지역으로 새롭게 유입된 신진세력(김알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라 건국과 관련된 신성한 이미지와 달리 우리 삶 속의 닭은 민중과 함께 울고 웃는 친근한 느낌이 강하다. 닭은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먹을거리가 돼 줬기 때문이다. 어렵던 시절, 도시락 속의 달걀후라이는 풍요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기차여행에 빠질 수 없는 간식거리였던 삶은 달걀과 사이다 한 병은 요즘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장모님은 사위가 오면 귀한 씨암탉을 잡아 백숙을 끓여주며 사랑과 관심을 나타냈고,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치맥(치킨+맥주)이 됐다.

문학작품에도 닭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김동인의 ‘감자’에서 수탉은 주인공 간 갈등의 촉매로,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수탉은 사랑의 매개로 사용된다. 이육사 시인은 ‘광야’란 시에서 하늘이 열리는 때 울렸을 닭 울음소리를 그리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다.

◆닭의 해, 닭띠 주요 인물은?

닭은 성실과 풍요를 상징한다. 때문에 정, 재계에서 이름난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전력에너지업계에선 한준호 삼천리 회장(1945년생)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7년부터 삼천리와 인연을 맺은 한 회장은 올해로 CEO만 10년째를 맞는다. 행시 10회로 공직에 입문해 자원과 유독 인연이 깊었던 한 회장은 지난 2004년 한전 사장에 취임하고 2007년부터 삼천리에 몸담으며 집단에너지, 발전사업 분야는 물론 사업다각화를 위해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구자균 LS산전 회장(1957년생)도 대표적인 닭띠 CEO다. 구 회장은 기존 사업에 더해 스마트그리드,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고 있다. 스마트그리드협회장과 국회 신재생에너지포럼 운영위원장 등을 맡으며 신산업분야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신기후체제로 인한 에너지시스템 전환기를 맞아 LS산전의 마이크로그리드 등 다양한 플랫폼을 자신있게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1957년생) 또한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500억달러의 투자와 5만개의 일자리를 약속한 손 회장이 선행투자의 귀재라는 별명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69년생 닭띠 CEO는 이우정 넥솔론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07년 이우현 OCI 사장과 각각 50억원씩 출자해 넥솔론을 설립했다. 태양광 웨이퍼 생산으로 한 때 글로벌 태양광 웨이퍼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기도 했지만 태양광 시장 침체와 공급과잉으로 인해 현재는 경영난을 겪고 있다.

정계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57년생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정훈·우원식 의원도 1957년 동갑내기다. 이정희 전 의원은 1969년생으로 닭띠다. 삼성가의 안방마님 홍라희 리움 관장은 1945년생으로 2조원대에 육박하는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닭띠 주식부호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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