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1박 2일의 양평 송년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배와 함께 수종사에 들렀다. 12월의 것이라기엔 햇볕이 너무 좋았던 때문이었다. 번잡한 서울의 일상으로 순순히 귀순해야 할 이유를 딱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발 610m의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로 이어진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좁은데다 가파르게 굽이져 위험해 보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차와 아래에서 올라가는 차가 서로 마주칠 때마다 아슬아슬 곡예 운전이 펼쳐지기 십상이었다. 그런 길이 1km 넘게 산에 새겨져 있었다. 차의 소통을 돕는 비포장 공터마다 차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오르는 길은 더디고 느렸다. 갑자기 눈이라도 쏟아져 내리는 날에는 올라가는 차나 내려가는 차나 옴짝달싹 못하고 그대로 산길에 갇히는 신세가 될 것이었다.

차들로 넘치는 주차장에서 자리를 얻지 못해 좁은 길가 한쪽에 바짝 차를 대놓고 등산객들과 섞여 절에 올랐다. 옷을 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절은 눈앞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느릿느릿 계단을 걸어 마당에 올라서자 약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부병 치료차 금강산에 다녀오던 세조가 청명한 종소리를 내는 약수를 발견하고 ‘수종(水鍾)’이라 이름 붙였다던 전설 속의 그 물이었다. 물은 맑고 시원해 갈증을 일거에 씻어내는 맛이 있었다.

절 앞마당 아래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일품이었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은 그곳에서 만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겨울 하늘빛으로 맘껏 물들며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때와 장소를 얻어 저마다의 생을 잠깐 살다 떠나는 인생은 시인이 말하지 않아도 강물을 닮았다. 누구든 앞 세대를 따라 티끌로 돌아가며 뒷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을 수 없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내려가는 강물은 시간과 물질을 더 움켜쥐려고 악다구니를 부리는 인간들에게 부질없음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었다.

두물머리에서 두 개의 강물이 우연히 만나 절묘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듯 인생도 마냥 무던히 흘러가지는 않는다. 굽이마다 예기치 못한 변곡점이 기다리며 고비가 되고 기회가 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기도 한다. 유명세를 누리던 사람이 한 순간의 잘못으로 이름에 먹칠하고 대중에게 잊힌 채 고독한 삶에 갇히기도 하고, 무명의 설움과 궁핍함에 절망하던 사람이 한 순간의 행운으로 오래도록 부와 명예를 만끽하기도 한다. 따라서 잘 나간다고 오만해서는 안 되며, 바닥에서 허덕인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작년 여름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랐을 때 깨달았다. 정상은 머무를 수 없는 곳임을, 정상에서는 곧바로 내려감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보면 때로 억울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삶을 살면서 얻는 경험이 세상사를 통찰하는 남다른 깊이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삶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고 나서 해야 할 일은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산길이 굽이굽이 돌아 오르듯, 물길이 굽이굽이 돌아내리듯 세상사 모든 일은 회전하며 나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직선의 지름길은 그래서 위험하다. 회전하되 현실의 장벽에 낙담한 채 자신의 마음 안으로 자꾸 파고들지 말아야 한다. 돈이 없어서, 학력이 낮아서, 키가 작아서, 외모가 볼품없어서 등 할 수 없는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지 말고 밖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밖에서 부딪쳐야 한다. 그런 노력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인생의 결정적 순간으로 데려다준다. Volution(회전운동) → Involution(퇴행) or Evolution(진화) → Revolution(혁명)의 ‘결정적 순간의 공식’을 기억하자. Evolution을 반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수종사 마당을 가로지르면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수백 년 동안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며 나무는 이 땅의 여러 결정적 순간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수종사를 떠나는 내내 나무 둘이 등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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