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일주일 전만해도 풍성한 황금빛 잎사귀들을 하늘거리던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한 차례의 비에 완전히 발가벗었다. 저녁 바람이 닿을 때마다 살이 시린 듯 나무는 가녀린 뼈들부터 몸서리쳤다.

사람들이 ‘잊혀진 계절’을 부르며 시월의 마지막 밤을 넘어오는 동안 세상을 끓였던 시월의 이야기는 서늘한 밤공기에도 떨어질 줄 몰랐다. 역사 소설에나 나올 법한 그 이야기는 번식을 거듭하며 새달의 옷자락을 붙들고 따라왔고, 사람들은 이야기들의 비현실성과 어처구니없음에 몸서리났다.

2016년의 가을, 온 국민이 앓고 있는 정신적 몸살에 차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자 근심 수(愁)를 들여다보면 가을(秋)의 마음(心)이 보인다. 가을 추의 사전적 의미 가운데 가을 외의 다른 뜻을 사용한 것이지만, 보이는 것은 달리 없다. 가을은 곡식(禾)을 베어 말리는(火) 계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봄부터 걱정만 하며 지내온 세월을 뒤로하고 마침내 풍성한 결실을 맺은 가을에도 왜 옛사람들은 근심부터 해야만 했던 것일까? 남의 땅을 빌린 대가와 세금으로 농사의 결실을 다 내보내고, 남은 한줌의 곡식으로 기나긴 겨울을 날 생각에 가슴이 먼저 저려온 것은 아닐까? 허약해진 몸에 감기라도 걸리면 약 한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어린 자식들을 저 세상에 보내지 않을까하는 염려로 잠 못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늙은 부모는 부모대로 “내가 올 겨울을 무사히 넘겨 새봄을 볼 수는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괜스레 서글픈 마음에 사로잡혔기 때문은 아닐까? 산과 들에 나물이라도 올라오는 봄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풀죽이라도 쒀 먹으며 기력을 유지하고 다시 논에 볍씨를 뿌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에 감사를 올리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허허벌판에 찬바람이 나다니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근심은 저절로 피어났을 것이다. 시대는 많이 바뀌었지만 오늘날에도 세상살이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사람들 근심의 대부분은 아직도 먹고사는 일에 닿아 있다. 일자리는 늘 부족하고 불안하다. 일터에서 함께 어울려 협업하는 즐거움은 드물고 경쟁은 치열하다. 경쟁에서의 패배는 곧바로 생존을 위협한다. 가정은 파괴되고 가족은 해체된다. 일터에서 상대적 강자들의 횡포는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갑갑하게 목 죄고, 온 종일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여도 생활은 찬바람 한줄기에 흔들릴 만큼 허약하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 서서 삶의 지혜나 성공의 비결이랍시고 떠들어대는 말들은 개인의 행복을 겨냥하고 있지만 세상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풍요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가난하고 불행한 상태로 남아 있다.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 사람들은 돈이 없을 때 감당해야 할 고통의 크기를 온몸으로 맛보았다. 바람이 선선해지면서 하나의 근심이 사라지는가 했더니 가을은 더 혹독한 절망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국민들이 버거운 삶에 시달리는 동안 통치자의 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나라의 시스템 전체를 사익의 추구에 활용해 온 자와 부당한 특권을 마음껏 누려온 그 자의 자식 이야기는 국민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맛보게 했다. 그 자의 곁에서 달콤한 권력을 누리며 축재를 일삼은 자들과 그 자를 이용해서 특혜를 받고자 한 자들이 펼친 국정농단의 한바탕 무당춤은 국민들의 가슴에 폭염보다 뜨거운 분노의 불길을 일으켰고, 통치자의 무능과 비겁은 차가운 도시의 밤거리를 촛불로 밝히게 만들었다. 그 사이, 제 아무리 지지고 볶으며 살아도 살맛 나는 세상과 만날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달은 국민들의 가슴에는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상처가 새겨졌다.

계절은 흘러 다시 봄은 온다. 갈라진 상처의 틈으로도 새봄은 와야 한다. 새봄이 오기 전에 해가 먼저 바뀐다. 새봄처럼 따뜻한 나라의 내일을 꿈꾸며 찬란한 새해를 맞을 자격이 있는 국민들임을, 가을밤을 달구는 촛불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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