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영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
허균영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

요즘에는 협업을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아무래도 세상일이 복잡해 졌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지인들과의 수다(?) 시간도 늘고 있는데 운이 좋게도 칼럼 주제로 쓸 만한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전문 분야에서 믿고 참고할만한 그래서 쓸 만한 보고서가 없다는 불평으로 수다는 시작됐다. 만나면 늘 하는 아주 일상적인 투덜거림이었는데, 이날따라 그 원인을 찾는다고 한참동안 설왕설래하다가 우리가 원점부터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 저변은 그다지 탄탄한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장점이었던 패스트팔로어는 결국 지식의 형태가 좁고 얇다는 것과도 맥이 통한다. 타인의 계산 결과를 가져다가 신속하게 재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의 산업이 여러 곳에서 이미 한계에 와 있음은 자명해 졌다.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결과를 빌려 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상한 환경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나의 계산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원점에서부터 무언가를 시작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어떤 문제의 맥을 짚는 보고서가 없는 것이다.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수업시간에 배운 문제를 그대로 내면 잘 맞춘다. 원래 문제를 수정해서 내면 점수가 다소 떨어지는데, 재미있는 점은 더 어렵게 수정을 하든 더 쉽게 수정을 하든 점수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물고기만 잡아서 주는 필자의 교수법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다음 학기에는 청출어람 해야겠다.

시간이 갈수록 수다의 깊이는 차츰 심오하게 전개됐다. 원점부터 해보지 않은 엔지니어링은 금세 밑천이 드러난다는 경험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엔지니어링에서는 성능과 안전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단순히 방정식 결과만을 활용하지 않는다. 계산 결과는 100이라고 나왔어도 이런저런 이유에서 10을 사용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1로 결정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논의의 과정이 사실 엔지니어링의 핵심이다. 남의 결과만 가져다 쓰면, 그 과정에 녹아 있는 엔지니어링의 정수를 볼 수가 없다. 핵심 역량이 결여되면 내가 스스로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무척 당혹스러운 상황이 생긴다.

매우 흔한 경우는 이렇다. 100이라는 결과도 충분하지만 여기에 여유를 더해 200이라고 한 것도 모르고, 300이라고 주장한다. 비용만 쓸데없이 더 들어가는 것은 양반이다. 잘못하면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신 있게 200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없다. 200이라고 어렵사리 이야기를 하면 대책이 전무하거나 부실하다고 질타를 받는다. 만일 150이 더 낫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외국 전문가다. 이사람 저사람 의견이 중구난방이 되면 나오는 단골 메뉴가 ‘원점에서 재검토’다.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수다의 백미는 최종 결론이, 아주 엉뚱하게도 우리는 너무 원점에서 재검토를 남발한다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문서화된 지식, 즉 형식지만으로는 그 이면에 쌓여 있는 정말로 필요한 노하우, 즉 암묵지를 유지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 초청 강연이라는 것이 결국 청자로 하여금 문서에 드러나지 않는 암묵지 지식을 얻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형식지 조차도 너무나 허술하게 작성되고 관리돼 다음 세대로 최소한의 소중한 교훈이 넘어가는 실례도 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 원점에서 재검토 아니겠는가. 포털을 한번 검색해 보면, 얼마나 많은 ‘원점에서 재검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초부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자세를 미련하다 폄하하지 말고, 선배가 내린 어려운 결정의 단계를 평가절하하지 않는, 그래서 원점에서 재검토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공들여서 하는 그런 사회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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