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마 불의 발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문자와 바퀴의 발명일 것이고, 최근 200년간을 한정한다면 아마도 전기를 이용한 전구와 전보(電報), 그리고 세탁기 등을 꼽는다. 세탁기는 의외일 듯 하지만, 이로 인하여 여성이 사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 무엇이 있을까. 사진을 꼽고 싶다.

어느 카메라 광고에서 이런 문구를 쓴 적이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분명 사진은 현상을 기록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데 탁월한 도구이다. 지금은 카메라 제작 기술을 비롯하여 사진을 매우 현실적으로 찍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나, 이를 재생하는 영상 기술 등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학렌즈의 크기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센서의 기능 등에서 아직은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이 훨씬 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카메라가 맨 처음 발견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빼내간다고 하여 겁을 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카메라가 들어온 것은 1800년대 후반이다. 지금도 그 때 촬영된 사진 덕분에 그 당시의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의 건축정보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사진 가운데에는 스테레오 사진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두 눈 간격과 비슷한 간격으로 두 개의 렌즈를 하나의 카메라에 장착하여 한 번에 두 장의 사진을 찍는데, 이 두 장의 사진을 스테레오 뷰어라는 장비에 장착하고 보면 마치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은 입체감을 준다.

지금은 아예 360도 전체를 한 번에 촬영하여 만든 입체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고, 인터넷을 통하여 내가 보고 싶은 도시나 마을의 모습을 입체로 돌려가며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HMD(Head Mount Display)를 착용하여,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집안에서 자유롭게 탐험하는 시대가 왔다. 컴퓨터와 사진, 그리고 프로그램의 발전에 역사를 더하면 그 공간은 시간마저 뛰어넘는다.

지난 10월 7일 경주에서는 디지털 문화유산(DCH, Digital Cultural Heritage)를 주제로 하는 흥미로운 포럼이 열렸는데, 3차원 복원체험과 3차원 가상현실 속 스토리텔링, 그리고 황룡사 가상복원이 주된 내용이었다. 황룡사는 신라 때 조성된 최대 규모의 사찰로 지금은 폐허로 남아 우리에게 큰 역사적 감흥을 주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고려 몽고의 침입 때 소실된 9층 목탑이 있다. 목탑의 형태와 특징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으며,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첨단과학의 도움을 받아 가상의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다. 폐허가 주는 역사적 감흥과 건축적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1,400년 전의 경주와 황룡사를 상상에 그치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구려 고분이나 백제의 공산성도 이러한 기술과 도구를 이용하여 경험할 수 있다. 지금 디지털 문화유산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 궁궐과 사찰, 향교와 서원 등 건축문화재와 고려청자와 같은 동산문화재를 3차원 스캐너로 정밀 스캔하여 3D 데이터로 가공한 뒤, 이를 재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거나 소실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숭례문 화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세종시에 디지털 문화유산 영상관을 운영 중인데, 이곳에서는 3D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전시가 진행 중이며, 석굴암,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 등에 대한 3D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더 나아가 2018년에는 세종시에 디지털 문화유산 박물관도 건립될 예정이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문화재를 보존하는 방법은 달라지고 있다. 문화재의 가치는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보존되어야겠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생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마모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다. 디지털 문화유산은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