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전 세계는 두 번의 큰 전쟁을 겪었다. 그로인해 상당히 많은 도시가 파괴되었고, 이들의 재건과정에서 도심지에 위치한 유적의 보존과 재건이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59년 이집트의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 Dam)이 건설되면서, 건립된 지 3000년이 된 누비아(Nubia)유적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이 유적의 보호를 위해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국제 캠페인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의 보호는 한 국가가 아닌 인류 공동의 책임이라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유네스코는 1972년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88년 102번째 국가로 이 협약에 가입하는데, 이것이 ‘세계유산(World Heritage)’의 시작이다.

세계유산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과 단계를 갖추어야 한다. 먼저 흔히 말하는 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기준을 충족하여야 한다. 그리고 해당 유산이 고유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가 입증되어야 하는데, 이는 유산과 관련된 연구나 저술, 자료 등 객관적인 자료가 축적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러한 가치를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 예를 들면 정부 조직이나 민간단체, 법이나 제도적 보호 장치 등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완비되어야만 세계유산 등록절차에 따라 등재를 추진하게 된다.

등재 판단은 10개의 기준을 바탕으로 검토되는데, 예를 들어 인간의 재능이 드러난 걸작이거나, 중요한 문화나 문명의 증거, 혹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 등이다. 이 가운데 여섯 개는 석굴암이나 해인사와 같은 문화유산, 네 개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과 같은 자연유산의 기준인데, 하나의 기준만 충족되어도 등재가 되며,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진 경우에는 복합유산으로 구분한다. 2016년 현재 165개 국가 1052개 유산이 등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가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 2015년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포함하여 모두 11건의 문화유산과 1건의 자연유산이 등재되어 있다.

등재는 먼저 해당 국가에서 잠정목록에 등록하고, 1년 정도 신청을 준비한 뒤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출된 신청서가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된 경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국제문화재보전복구센터(ICCROM)와 같은 전문기구의 전문가에 의한 현장 실사 평가가 이루어진다. 실사 보고서에 대한 해당 기구의 내부심사를 거쳐, 등재권고, 보류, 반려, 등재불가의 권고안이 작성되면, 이를 기초로 매년 1회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등재여부가 결정된다.

어떤 법률이나 제도가 마련되는 데에는 이에 대한 필요성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해당 법률이나 제도를 이용하여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목적이나 결과를 추구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세계유산제도 또한 국제적 관점에서 가장 탁월한 몇몇의 유산과 지역을 선정하여 보호하는 것이 당초의 취지였으나, 각 나라의 문화적 자존심과 외교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언급되기도 하며, 한 국가 안에서도 자치단체들 간의 등재 경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때문에 등재된 이후 발생되는 문제들로 인해 등재 당시의 조건이나 기준이 영향을 받으면서, 등재가 취소된 사례가 발생하였다. 또한 가치 평가 기준의 변화나 문화적 견해의 차이 등을 이유로 등재된 유산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사례도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1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해 파괴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Bamiyan) 석불과, 2012년 파괴된 팀북투(Timbuktu)다.

유산의 가치는 해당 유산의 완전성과 진정성이 존중받을 때 보존될 수 있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를 거치면서 누적된 변화나 폐허 역시 유산의 고유 가치이다. 세계유산 제도의 설립 취지대로 국경을 초월할 만큼 독보적이며 시대를 뛰어넘어 전 인류에게 공통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되는 문화나 자연 유산은 보존되어야 한다. 유산 보존의 가치 판단 기준을 어느 한 시대의 경제나 종교, 문화적 배경에 두어서는 안되며, 현 시대의 어느 한 가지 이득에 대한 논리를 바탕으로 유산을 훼손하거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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