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했을뿐입니다. 왜 19살 청년이 죽어야 합니까.”

서울 지하철 7호선 구의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남겨진 글 중 하나다.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한 젊음의 죽음을 위로하는 짧은 글이다. 이유도 모른 채 청춘의 죽음을 속절없이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진도 팽목항, 안산 단원고, 강남역, 구의역 플랫폼,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 비극적인 사건의 흔적이 전국 곳곳에 기록되고 있다. “미안하다”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은 바짝 마른 눈물처럼 추모의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찬찬히 글을 읽다보면 지금은 내가 아니지만 다음엔 내가 될 수 있다는 모두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 나를 포함한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추모의 벽을 마주하는 이들도 물방울이 맺힌 눈으로 현실의 공포를 마주한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이것’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하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의 병폐가 몸집을 점점 키우다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펑’ 터지듯 사고가 발생한 건 아닐까. 사고가 일어나기 전 수많은 신호가 우리에게 보내졌는데 애써 무시해왔던 탓은 아닐까. ‘이 정도는 괜찮아, 아직 최악은 아니잖아, 현실적으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라는 명분을 앞세운 적은 없는지 삶을 돌아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누군가의 지적에 가슴 한구석이 뜨끔하다.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대형사고는 인재(人災)로부터 시작됐다. 효율성, 경쟁, 성과우선이라는 미명아래 우리는 서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우고, 그게 최선인 것처럼 포장하진 않았나. 그런 사회 분위기가 존재하는 한 어떤 재발 방지대책도 무의미하다. 인재를 막을 수 있는 건 인간다운 삶,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